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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퍼온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상철 1 2,438 2010.03.28 06:20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지난 3월10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교정에 한 대자보가 붙었다.

경영학과 3학년인 김예슬씨가 쓴, ‘자본과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된 대학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자퇴선언서였다.

 

고려대학교 학생이었던 김예슬양의 탈대학 선언문이 충격과 성찰의 파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학을 그만두는 학생은 많았지만, 대학 자체를 거부한다는 선언을

공개적으로 내놓고 대학에 도전한 학생은 김양이 처음이다.

대학이나 주류 언론은 이를 묵살하고 있지만

학생, 학부모, 일반 사회는 조용히 그러나 크게 술렁이고 있다.

 

 

  자퇴선언서 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한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

 

명문대 입학은 ‘끝없는 트랙’의 첫 관문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25년 동안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는 의무교육의 이름으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고,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하청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는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 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동시에 이 체제를 떠받쳐온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돌멩이 하나 빠져도 끄떡없다 하겠지만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됐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大學生)의 첫발을 내디딘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예슬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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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퇴교선언, 김예슬씨가 부럽다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에서 퍼옴  교육칼럼 2010/03/20 13:44

  

지난 10일 고려대 경영학과 김예슬씨는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정경후문에 붙이고

‘자발적 퇴교선언’을 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김예슬씨의 자퇴선언은 이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저항하는 절규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분신한 전태일을 연상케 한다.

 

현대를 사는 사람치고 학벌이 만들어 놓은 굴레에서 자유스러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치,경제,사회,문화가 학연으로 얽히고 종교와 언론까지 이성을 잃은 지 오래다.

사용가치로 사람을 등급매기는 사회. 자본의 필요에 의해 인간을 길들이고 규격화하는

사회에서 사람은 사람대접 받기는 어렵다. 학벌과 자격증이라는 굴레, 돈과 명예와

허례허식과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사회에서는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를 기대할 수 없다.

 

자본의 입맛에 맞게 길들여지기를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김예슬씨 뿐이겠는가.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의지와 용기...

그 굴레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질이란 제자리걸음이다.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덧씌워진 굴레를 벗어던져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김예슬선언은 이 시대를 향해 던지는 인간선언이요, 경고장이다.

교육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모순들,

이제 우리는 그 부끄러운 가면을 벗어야할 때가 아닌가.

 

 

 김예슬 선언에 이어 이화여대 07학번 심해린씨가

<'김예슬 선언' 앞에 교수님들의 양심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고려대와 이화여대에 붙였다. 사진은 심해린씨의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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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승용 칼럼]김예슬 씨의 자퇴서에 대한 변명  

2010년 03월 17일 (수) 16:18:20 뉴스천지 btn_sendmail.gif newscj@newscj.com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씨가 스스로 대학을 그만두었다.

김 씨는 자퇴서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그가 서술한 여러 말 중에서 나는 ‘거부한다’는 단 한 구절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든 모순을 포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여 나는 그의 자퇴서가

한 젊은이의 개인적 자퇴서가 아닌 이 시대를 향한 선전포고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수월성교육이 지고지선이요, 신자유주의가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여겨지는 오늘

한국사회에 조목조목 섬뜩한 경고를 날린다.

 

  

 

  [세상읽기] 김예슬씨의 글을 읽으며 /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한겨레신문 

 

“이제 대학과 자본의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대학생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글을 읽는다.

숨죽이며 읽고 또 읽는다. 나는 그의 글이 한편의 기다란 시라는 생각이 든다.

유신 치하에 숨막히던 이들에게 던져진 김지하의 시가 그러했을까.

나는 하루종일 그의 글이 준 감동과 충격 속에 있었다.

 

초·중·고 12년을 대학 하나만 바라보고 내리닫게 채찍질을 했다.

그렇게 진입한 ‘약속의 땅’이었건만, 그들을 정신적 백치가 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굴레 속으로 다시 밀어넣는다. 그렇게 4년을 내달리게 하고서도 끝내 그들을 청년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신용불량자로, 나이 서른이 다 되어도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른아이’로 빚어내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재 양성 과정’이 아닌가.

 

나는 최근 들어 <녹색평론>에 자주 소개되는 ‘사회신용론’과 ‘기본소득’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다. 밑줄긁으며  관심을 가져도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은 ‘돈’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이 이 모양인 줄 알면서도 왜 대학을 가기 위해 이 난리들인가.

대학을 통과해서 기업에 고용되지 않고서는 ‘돈’에 접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은 어디에 있는가. 돈은 은행에만 있고, 서울에만 있고, 상위 2%에게만 있다.

오늘날 돈은 분명 과잉인데도 국가도 기업도 돈이 모자라 끝없이 돈을 빌리고,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몸부림치고, 결국 사람 몫으로 돌아갈 돈을 가로챈다.

그래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은 구조조정된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이 가지 않는다.

 

 

 

  [시론]대학생 ‘드롭 아웃’,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석훈 | ‘88만원 세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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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김예슬 비로소 자유인 되다

기존의 구조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을 ‘드롭 아웃(drop out)’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한다.
일본에서 먼저 유행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김예슬씨의 고려대 자퇴는, 최초의 공개적인
‘드롭 아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드롭 아웃은 현재의 구조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자, 자신의 삶에 대한 결단적 애정 같은
것들이 결합된 현상이다. 잘 나가는 직장인, 금융회사 간부, 대학 교수, 이런 사람들도
“사는 게 이게 아니다”라고 드롭 아웃을 결행한다. 뭐 먹고 사냐? 걱정할 필요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시험 보고 취직하는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 김예슬은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고, 성인이 된 셈이다.
뒤늦은 성년식, 축하한다! 그는 이렇게 시대의 아방가르드가 되었다.


대학생의 역사속 귀환의 신호

주인이 노예에게 뺏기 시작할 때, 그 빼앗김은 저항이 없다면 끝이 없다.
파견사원, 주급제 등 아직 한국에 도입되지 않은 참혹한 제도들이 더 있는데,
인턴제가 도입된 것과 마찬가지로 곧 도입될 것이다.
 
만약 저항이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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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스무살 여대생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년  김예슬양의 자퇴의 변이다

그리고 그것에대한 인터넷상의  여러 견해를  발췌 하여 정리를 한것입니다.

 

여러글과 견해와 논조를 읽으면서 한마디로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합니다.

 

대학을 나오고서도 변변찮게....인턴은 커녕 아르바이트도 만만치 않은

수많은 청년실업자 젊은이들을 봅니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불투명한 혼돈과  애매한 처신들을 보게되면서

(오죽하면) 차라리  예전 우리네(저는 50대 후반입니다) 세대가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그런 생각조차 듭니다.

 

그때는 단지 가난했다는것뿐이지  상대적 박탈감이나 빈부의 격차가

지금보다  유난스럽지 않았기에 오히려 계층간 위화감이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덜하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개인적 견해입니다)

우스개 소리 같지만 그때는 오히려 가난한 집 아이들이 더 공부를 잘하여

서울 명문대도 꽤나 들어갔었던 기억입니다. 

 

정말 이대로 나간다면 언제 취직하고 언제 돈벌어서 언제 장가, 시집가고

언제....언제 애 낳고....언제 커서....언제....언제....

분명 국가적인 중차대한  상황임에도  답답할뿐입니다.

노령층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이러다  가면 갈수록 어떤 공황 (경제적 공황이 아닌 정신적 공황)이 닥칠지도

모르겠다 하는 불안감을 떨칠수가 없네요..... 

 

제 주제에....넋두리가 공허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푸념같은 주절거림이었습니다.

부디  "88만 세대" 들에게  그래도 포기하지말고  용기를 읺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법정스님의 한말씀...."주고 싶으면 살아있을때 줘야돼" 라는 말을 

되짚어 보면 받을만한 사람이 살아있을때 나누어야지....받는 사람조차도

다 죽고 나면 주고 싶어도  못주는것을.... 그렇게 억지 궤변을 덧붙입니다.

 

                                 pcp_download.php?fhandle=cDEwSUBmczE1LnBsYW5ldC5kYXVtLm5ldDovMTI2MTIxNjUvNC80ODYuanBnLnRodW1i&amp;filename=486.jpg

  

헛허허허, 그렇다는겝니다.....

 

 

2010.  3.  21. 까망가방입니다. 

(위 인터넷 상에서 퍼온 인용글에 대해서 문제 제기시 즉시 삭제 하겠습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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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스스로를 C급 경제학자로 낮춰 부르는 우석훈 경제학자와와 박권일 기자과 같이 쓴 경제학 책

386세대(63~69),  7080세대, 유신 세대(50~60), 해방전후 세대(50년전) 

88만원 세대란 '20대의 95%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 아래 비정규직 평균임군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한 수치입니다.

 

지금의 1O대와 20대는 기껏해야 주유소나 편의점을 떠도는 `알바 인생`이거나 비정규직 신세다.

지은이가 보기에 `88만원 세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경쟁 사회`를 자신들의 경쟁,

즉 `세대 내 경쟁`이라고 인식하나, 사실 그들이 부딪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뿐더러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게임의 현장이라는 것에 있다.

Comments

김상철 2010.03.28 06:26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대자보가 붙고 한 사실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네요.
자녀를 교육시키는 부모라면 공감을 하시는지요?
아니면 허탈감을 느끼셨나요?
이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뭔가 던져주는 메세지가 있는듯 합니다.
평을 해 주시는 분들도 자녀 교육에 자요롭지는 못했을겁니다.
흐린 날 아침에 자녀교육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