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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칼럼 - 하회의 옥연정사 단상

옥연정사 0 2,580 2009.05.06 06:23
 

※ 지난 2일 오랜 지인인 호원대 한영용교수님(반가음식전문가/소격동 한정식"큰기와집운영")과 전 과학기술부 김영환장관과 함께 옥연정사를 찾으신 최영환 동아일보 편집국부국장님이 서울 가시자마자 이렇게 글을 올리셨습니다.<저우리테마마을 농가에서 하루 유하고 가셨습니다>

 

 

[오늘과 내일/최영훈]하회의 옥연정사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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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던 3일 새벽, 술을 꽤 마셨지만 눈이 떠졌다. 경북 안동의 하회(河回)마을 북쪽에 있는 옥연정사(玉淵精舍)를 거닐면서 고아(古雅)하고 범상치 않은 풍광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인가. 400년 넘는 고택인 옥연정사 인근에 묵었기에 전날 밤부터 새벽 강을 보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1542∼1607) 선생은 임진왜란 전 이순신을 발탁하고 권율을 등용하는 혜안으로 나라를 구했다. 물러날 때를 알고 만년에 9번이나 사직을 자청했으나 선조는 윤허하지 않았다. 낙향한 뒤 징비록(懲毖錄·국보 132호)을 쓰고 동량을 기른 그의 뒷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400년 고택에 깃든 西厓의 정신

 

옥연정사는 선조 19년(1586)에 청빈하게 살았던 선생이 승려 탄홍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대문에 안채, 사랑채, 별당까지 갖출 것은 다 갖췄으나 이 지역 민가의 기본인 도투마리(베를 짜기 위해 실을 감아놓는 기구)형으로 소박하게 지었다. 물돌이 마을인 하회는 동쪽으로 태백산의 자락인 화산(해발 321m)이 감싸고 있으며, 낙동강이 마을 전체를 껴안고 흐른다. 이곳은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의 길지로 임란 때도 전화(戰禍)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집터 위에는 하회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부용대(芙蓉臺·높이 87m)가 우뚝 서있다. 그 아래 심약한 사람은 걷기도 힘든 아슬한 벼랑길이 서쪽으로 나있다. ‘안동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한영용 호원대 교수는 “선생은 돌아가는 길을 두고 굳이 이 길로 형의 거처인 겸암정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들렀다”고 했다. 선생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는 요량으로 이 길을 걸었다. 동행한 한 교수는 “낙향의 느린 삶에서 오는 해이함을 다잡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징비록의 산실인 원락재(遠樂齋·논어의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옴) 대청마루에서 차를 마셨다. 앞에 서있는 450년 묵은 소나무가 예사롭지 않다. 물어보니 선생이 63세에 심은 수십 그루 중 하나라고 한다. 이승을 하직하기 3년 전 선생은 나무를 심으면서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 심경은 정사 초입에 서있는 비석에 새겨져 있다. 나무 심는 사람들은 50∼100년을 내다본다. 문득 미당(未堂)이 ‘질마재 신화’에서 노래한 침향(沈香·갯벌에서 수백 년 묵은 향)이 떠올랐다.

나무의 키는 10척이 채 되지 않을 것 같다. 품에 해당하는 옆이 더 커 보인다. 위에서 잘난 척하지 않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 옆과 아래까지 두루 살핀 선생을 닮은 것인가. 선생은 지금 이 나라의 많은 이가 목말라 하는 장점인, 실용을 중시하고 화합과 조정에도 능한 유연한 리더십을 지녔다. 오죽하면 율곡 선생이 “(후배인) 서애는 재주나 식견이 높아 임금께 올려 바치는 건의를 잘했다. 그러나 때로는 일관된 마음으로 봉직하지 못하고 이롭고 해로운 점만 따지려는 부분이 있어 단점이기도 했다”는 인물평까지 했을까.

 

검찰과 입씨름하는 전직 대통령

 

옥당(玉堂·홍문관) 최고벼슬인 대제학에 이조 및 형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낸 선생은 당파 싸움에 휘말려 두 차례 삭탈관직을 당했다. 이순신이 왜구의 흉탄에 스러진 날(1598년 11월 19일), 7년 전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그를 발탁했던 선생도 두 번째 파직됐다. 그는 선조에게 올린 ‘청광취인재계(請廣取人才啓)’에서 아무리 천한 사람,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도 재주만 있으면 무조건 써야 한다고 설파했다.

새벽 강엔 안개가 자욱하다. 잔뜩 웅크린 짐승처럼 새벽 강은 흐르고 또 흘렀다. 400년 세월도 그렇게 흐르고 흘렀다. 옥연정사 지킴이 김상철 씨(43)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선생은 청렴하고 질박하게 살다갔다”고 했다. 검찰과 입씨름하는 전직 대통령을 보면서 선생의 단아한 풍모와 형형한 눈빛이 새삼 그립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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